가나전 그 밤, 마지막 코너킥 하나만 차게 해줬어도 하는 아쉬움에 새벽까지 잠 못 든 분들 계시죠.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벤투 감독한테 레드카드를 꺼내 들던 그 검은 유니폼의 주심, 이름 석 자까지 외워버린 분들도 많을 거예요. 앤서니 테일러. 손흥민 첼시전 퇴장, 벤투 관중석 유배까지 한국 팬 가슴에 스크래치를 잔뜩 남긴 그 심판이 20년 커리어를 접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원수라 부르던 이름이 무대에서 내려간다니 시원섭섭한 이 기분, 저만 그런 건 아니죠.

일단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갈게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간판 주심 앤서니 테일러가 2026년 7월 21일(현지시각) 은퇴를 공식 발표했고, 통산 831경기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긴 채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한국 팬 입장에선 2019년 손흥민 첼시전 퇴장과 2022년 벤투 가나전 퇴장, 두 사건의 주인공이라 이름값이 남다르죠.
그러니까 오늘 글 하나면 “이 심판이 왜 우리한테 원수 소리를 듣나”가 시간순으로 싹 정리됩니다.
그래서 이 심판, 대체 누구길래 다들 이름을 외웠을까요?
앤서니 테일러는 1978년 10월 20일생, 올해 만 47세예요.
맨체스터 위던쇼 출신인데, 재밌는 건 처음부터 축구 심판이 본업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국내 기사들이 죄다 “교도관 출신”이라고 쓰는데, 정확히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잉글랜드 교도소·보호관찰청(HM Prison and Probation Service)에서 일한 교도관이 맞고요.
그 이전엔 힐튼호텔 프런트에서 손님 맞던 호텔리어이기도 했습니다.
교도관에서 호텔리어까지, 이 정도면 서비스업과 통제업을 두루 거친 셈이라 카드 꺼내는 손이 그렇게 매정했나 싶기도 하고요 (농담입니다).
2006년에 프로 심판으로 데뷔해서 2010년 EPL 심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2013년엔 FIFA 국제심판 배지까지 달았어요.
여기서부터가 진짜 커리어의 시작이죠.
프리미어리그에서만 16시즌 동안 432경기, 국제경기 163경기를 포함해 통산 831경기를 관장했습니다.
FA컵 결승(2017·2020), 리그컵 결승, UEFA 슈퍼컵, 네이션스리그 결승, 유로파리그 결승까지 굵직한 무대는 거의 다 밟았어요.
즉, 논란만 많았던 심판이 아니라 빅매치에 계속 불려 다닌 검증된 심판이기도 했다는 거예요.

손흥민 그 레드카드, 그날 진짜 무슨 상황이었을까요?
시계를 2019년 12월 22일로 돌려볼게요.
토트넘이 홈에서 첼시에 0-2로 끌려가던 EPL 18라운드였습니다.
여기서 미리 짚고 갈 게 하나 있어요.
블로그나 검색 글 보면 이 경기를 “카라바오컵(리그컵)”으로 잘못 적은 경우가 꽤 많은데, 아니에요.
정규리그 프리미어리그 경기 맞습니다.
상황은 이랬어요.
손흥민이 안토니오 뤼디거와 몸싸움 끝에 바닥에 넘어졌는데, 누운 채로 다리를 뻗어 뤼디거를 걷어차는 듯한 동작이 나왔죠.
주심 테일러는 처음엔 그냥 넘어갔는데, VAR(폴 티어니 권고)로 화면을 다시 본 뒤 다이렉트 레드카드를 꺼냈습니다.
뤼디거가 과하게 넘어가는 할리우드 액션이었다는 논란도 컸지만, 결과는 처참했어요.
퇴장.

토트넘은 가만있지 않았어요.
당시 감독이던 조세 무리뉴가 “잘못된 레드카드”라며 강하게 옹호했고, 구단은 곧바로 항소를 넣었거든요.
하지만 2020년 1월 초 항소는 기각됐고, 손흥민은 3경기 출장정지를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이 무리뉴라는 이름, 뒤에서 또 나오니까 잠깐 기억해두세요 (떡밥 회수 예정).

벤투 감독은 왜 코너킥도 못 차보고 쫓겨났을까요?
그리고 우리 가슴에 대못을 박은 그날, 2022년 11월 28일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한국 대 가나전이에요.
2-3으로 쫓기던 후반 추가시간, 한국이 마지막 반격을 노리던 코너킥 기회가 있었죠.
그런데 테일러는 그 코너킥을 차게 해주지 않고 곧바로 경기 종료 휘슬을 불어버렸습니다.
규정상 심판이 추가시간 종료 시점에 경기를 끝낼 재량은 있어요.
문제는 그 ‘하필 그 타이밍’이 너무 야박했다는 거죠.
벤투 감독이 거세게 항의하러 달려갔고, 테일러는 망설임 없이 레드카드를 꺼냈어요.
감독한테요.
이 장면, 아직도 짤로 돌아다니잖아요.

이 퇴장 때문에 벤투 감독은 운명의 포르투갈전을 벤치가 아니라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16강 진출이 걸린 그 중요한 경기를 감독이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봤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쓰려요.
다행히 한국은 그 경기를 잡고 극적으로 16강에 올랐지만, 만약 졌다면 이 코너킥 이야기는 두고두고 더 회자됐을 거예요.

물론 반대 시각도 있긴 해요.
추가시간은 이미 충분히 흘렀고, 심판이 정한 시간이 끝나면 진행 중이던 플레이가 아닌 이상 경기를 끝내는 게 규정 위반은 아니라는 거죠.
감독 퇴장도 “항의 수위가 과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다만 “그 상황에서 굳이 감독한테 카드까지 줬어야 했냐”는 정서적 반발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규정은 규정이고, 마음은 마음이니까요.


첼시 팬 6만 명 청원, 혹시 가나전 때문이었을까요?
여기서 팩트체크 하나 짚고 갈게요.
이거 은근히 많이들 헷갈리는 부분이거든요.
“테일러 심판 배정 금지” 청원에 6만 명이 서명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죠?
그런데 이 청원은 가나전(2022년 11월)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2022년 8월 EPL 2라운드 첼시-토트넘전 판정에 대한 첼시 팬들의 반발이었어요.
정리하면 시간순이 이래요.
먼저 8월에 첼시 팬들이 Change.org에 청원을 올려 6만 명 가까이 서명했고,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1월에 가나전 논란이 따로 터진 겁니다.
둘 다 테일러가 주인공이라 자꾸 하나로 섞이는데, 엄연히 다른 사건, 다른 나라 팬, 다른 시점이에요.
이거 하나 알고 가면 다음에 누가 헷갈릴 때 조용히 정정해줄 수 있어요.
무리뉴는 왜 자꾸 이 심판이랑 부딪혔을까요?
아까 기억해두라던 그 이름, 무리뉴 나옵니다.
손흥민 사건 때 토트넘 감독으로 테일러와 각을 세웠던 무리뉴는, 이후 AS로마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거든요.
그런데 2023년 5월 UEFA 유로파리그 결승(세비야 대 로마) 주심이 또 테일러였어요.
이쯤 되면 운명의 장난이죠.
무리뉴는 경기 후 테일러에게 대놓고 항의하며 욕설을 퍼부었고, 이 감정은 팬들에게로 옮겨붙었어요.
며칠 뒤 부다페스트 공항에서 로마 팬들이 출국하던 테일러와 가족에게 의자를 던지는 등 물리적 위협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UEFA는 로마에 5만 유로 벌금을 물렸고요.
심판이 가족까지 위협받는 이 장면은, 뒤에 나올 은퇴 이유와도 묘하게 연결됩니다.

한눈에 보는 테일러 vs 한국축구·무리뉴 연대기
흩어진 사건들을 한 표에 모아봤어요.
날짜만 훑어도 “아 이래서 악연 소리 듣는구나” 싶을 거예요.
| 시점 | 사건 | 결과 |
|---|---|---|
| 2019.12.22 | EPL 토트넘 0-2 첼시, 손흥민 뤼디거 걷어차기(VAR) | 다이렉트 레드카드, 항소 기각·3경기 정지 |
| 2022.8월 | EPL 첼시-토트넘전 판정 논란 | 첼시 팬 Change.org 청원 약 6만 명 서명 |
| 2022.11.28 | 카타르 월드컵 한국 2-3 가나, 코너킥 미부여 후 종료 | 항의한 벤투 감독 퇴장 |
| 2022.11.29~ | 벤투, 포르투갈전 관중석 관전 | 한국은 승리로 16강 진출 |
| 2023.5.31 | 유로파리그 결승, 무리뉴(로마) 항의 | 부다페스트 공항 팬 위협, 로마 벌금 5만 유로 |
| 2026.7.6 | 북중미 월드컵 16강 스페인 1-0 포르투갈 | 통산 831번째, 마지막 경기 |
| 2026.7.21 | FA·England Football 통해 은퇴 발표 | 20년 심판 인생 마무리 |

47세면 이른데, 진짜 은퇴 이유가 뭘까요?
심판이 47세면 사실 한창이에요.
그래서 “왜 지금?”이라는 물음이 안 나올 수가 없죠.
여기서 확인된 사실과 추측을 확실히 갈라서 말씀드릴게요.
확인된 건 본인 성명입니다.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심판으로 활약한 것은 큰 영광이었지만, 압박은 거셌고 끊임없는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제 물러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적기라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밝혔어요.
마지막 경기는 2026년 7월 6일 월드컵 16강 스페인 대 포르투갈전이었고, 은퇴 발표는 잉글랜드축구협회(FA)와 England Football을 통해 나왔습니다.
최초 보도는 가디언과 데이비드 온스테인 기자로 알려져 있어요.
여기서부터는 추측 영역이에요.
부다페스트 공항 사건 같은 신변 위협이 결정적이었냐는 얘기가 많은데, 본인이 성명에서 특정 사건을 콕 집어 은퇴 이유로 말한 적은 없습니다.
성명엔 그저 “압박”과 “비판”이라는 포괄적 표현만 담겼거든요.
그러니 “공항 사건 때문에 그만뒀다”는 건 합리적 추정일 뿐 확정은 아니라는 점, 기억해두시면 좋아요.
솔직히 저는 이 심판을 오래 미워했어요.
가나전 그날의 야속한 휘슬을 아직도 못 잊거든요.
그런데 20년 831경기를 뛰고 가족까지 위협받으면서 버틴 사람이 “이제 그만 물러날 때”라고 말하는 걸 보니, 미움보다 묘한 인정이 남더라고요.
판정은 밉지만 그 세월은 아무나 못 채우니까요.
테일러 심판, 남은 인생 2막은 카드 없이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테일러 하면 손흥민 첼시전이 먼저 떠오르세요, 아니면 벤투 가나전인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그 장면’을 남겨주세요.





